주일예배

2018.1.14-기도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초의 선택(눅 11:1)

최고관리자 0 616 2018.05.02 17:05

기도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초의 선택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생각을 뛰어넘는 기도」의 저자인 ‘레이 프리차드’ 목사님의 이야기로 오늘 설교를 열고자 합니다.


이 목사님이 2003년 새해 첫 주일을 지나고 그 이튿날인 월요일 저녁 무렵 자전거를 끌고 나와 석양을 즐기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교차로에서 불법 좌회전을 하던 차 한 대가 갑자기 그가 타고 있던 자전거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어!”하고 소리치는 순간 그는 이미 차에 받혀 자동차의 보닛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자전거는 복잡한 길 한 가운데 나가 떨어졌지만 다행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양 방향에서 차들이 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닛 위에 널브러진 채로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다고 합니다. 기적처럼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고 다친 데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이어 보닛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자전거를 일으켜 보았습니다. 자전거도 망가진 데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럼 상대방 차라도 망가졌는가 싶어 자기를 받은 차를 보니 차도 전혀 긁힌 데가 없어 멀쩡하더랍니다. 그는 겁에 질린 상대방 운전자에게 다가가 “우리 아무도 다친 데가 없군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새해 주님의 축복을  누리시기 빕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의 아내는 교인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 몇몇 교인들이 프리차드 목사를 찾아와 “기도 응답이네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목사님께서 지난주일 설교 끝에 특별히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희들이 얼마나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한 줄 몰라요.” 그러더랍니다. 

이 목사님은 교인들의 기도로 이렇게 안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고 함께 하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하고 살아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이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시고 기도를 가르치신 예수님 자신에게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 예수님에게 기도하신다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지난주에 습관으로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습관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보자고 제가 여러분에게 제의를 했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해야 하는 기도인데도 특별히 습관처럼 기도하기를 요청 드렸습니다. 여러분, 어떠셨나요?


서양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각의 씨앗을 뿌리면 행동의 열매를 얻게 되고,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를 얻는다. 습관의 씨앗은 성품을 얻게 하고, 성품은 운명을 결정짓는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을 길러 준다면 자녀 교육의 90%는 이미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 규칙적으로 독서하는 습관, 예습하고 복습하는 습관, 운동하는 습관, 타인의 말을 잘 경청하는 습관, 봉사하는 습관, 교회 가는 습관, 성경 읽는 습관,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 준다면 무엇을 더 기대하겠습니까? 그래서 습관은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 말씀을 통해서 이미 예수님의 기도하는 습관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중요한 인물 중에서도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었죠.


다윗이며, 다니엘은 하루에 3번씩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기도하는 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습관을 가지셨습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지난 주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눅 22:39~40)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감람산 겟세마네 정원에 기도하러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내일 십자가를 지게 되는 사건 때문에 그곳에 가신 것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된 것은 ‘습관을 따라’라고 말씀하고 있죠?


이 기도는 결코 형식적인 습관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주일동안 기도를 시도해보았으나 형식으로 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습관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기도하는 주님의 모습을 본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 기도하는 방법을 알고자 주님께 가르쳐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주님처럼 기도하고 싶어진 것이죠.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일상적 습관이 아닌 거룩한 습관이셨던 것입니다. 아니 그분의 삶의 ‘거룩한 리듬’이셨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실존의 방식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배들은 예로부터 기도를 호흡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는 호흡을 습관적으로 하며 삽니다. 그러나 호흡을 멈추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래서 호흡은 생명인 것입니다. 


성경은 기도가 바로 그런 생명의 호흡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이제 금년 한해 주님의 거룩한 습관을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습관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고 싶으시면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거룩한 습관으로 만드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왜 우리가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가져야 하는가?


예수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왜 우리가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눅 22:40)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왜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6절을 보니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무엇을 합니까? 누워 잠자고 있습니다. 왜요?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눅 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왜 기도해야 하는지를 예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감당하고 견디기 힘든 시험의 요소들이 많습니다.

우상숭배, 음란함, 탐욕, 정욕의 유혹, 명예와 물질의 유혹, 먹음직하고 탐스럽고 지혜롭게 할 만큼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유혹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깨어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겁니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그 어느 누구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깨어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만들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다윗도 보십시오. 한순간에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큰소리치던 제자들도 결정적일 때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한결같이 유혹을 이겼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통찰력으로 통치했습니다. 왕이 120명의 고관들을 두었는데, 그리고 그 위에 3명의 총리를 두었습니다. 그 세 명의 총리 중에 가장 왕으로부터 신임 받은 사람이 누굽니까? 다니엘이었어요. 그러니까 나머지들이 가만있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다니엘을 끌어내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시기질투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고관들이 어떻게 하면 다니엘을 죽일까, 어떻게 하면 다니엘을 끌어내릴까? 이렇게 맨날 머리 맞대고 연구만 했습니다.


(단 6: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치고 유혹에 안 넘어간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서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다발을 들고 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뇌물과 청탁으로 유혹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 속 다니엘은 모든 유혹을 다 물리치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정상을 지켰던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다윗처럼, 다니엘처럼...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거룩한 기도의 습관이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고, 어려운 순간을 뛰어넘고 돌파함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이 거룩한 습관 따라 감람산에서 기도하셨기 때문에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기도해야 할까요? 

기도는 유혹에 넘어지기 전에 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눅 22:40b)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눅 22:46b)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유혹에 빠진 다음에 기도하려하지 말고, 시험에 이미 들고 난 다음에 기도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 말은 유혹에 빠진 다음에 기도하고, 시험에 빠진 다음에 기도하면 그만큼 그 유혹과 시험에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초의 수단”이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경우에 기도를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얻어터지고 난 다음에, 넘어지고 난 다음에, 유혹에 빠진 다음에, 실패한 다음에 그때에 우리는 기도의 자리에 나갈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기 전에, 유혹에 빠지기 전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먼저 기도하라는 겁니다. 할렐루야~!!!


만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졸지 않고 기도했더라면, 예수님이 잡히시던 그날 밤에 그렇게 무기력하게 도망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깨어서 기도해야 할 시간에 깨어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초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루를 시작할 때도 오늘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운전을 할 때도... 사고 나서 기도하는 것보다 사고 나기 이전에 매일매일 안전 운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더 큰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순간이 와도, 사람을 만날 때도 하나님께 먼저 묻는 묵도를 할 때, 이런 습관을 들일 때 만남도, 헤어짐도, 일을 성사시킬 때에도, 마무리를 지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고 성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도착해서 공부할 때도, 직장에 출근한 직장인들도, 출장을 가서도, 집회를 가서도, 늘 묵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자동차를 새로 살 때 길을 잘 들여야 하듯, 우리 신앙생활의 습관도 잘 들여야 합니다. 예배를 잘 들이는 습관, 공 예배에 빠지지 않는 습관, 늦지 않는 습관, 늘 기도하는 습관, 말씀대로 사는 습관, 십일조를 드리는 습관, 앞자리를 사수하려는 습관, 찬양할 때 일어서서 경건함으로 예배하는 습관 등등...

이런 좋은 습관은 늘 신앙생활 중에 하나님과 함께 시작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가지려면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을 전도 했으면 그 사람이 부담 가질까봐 아무 이야기를 안 하기보다는 좋은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왕 시작하는 것 첨부터 빡세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는 좀 더 눕고, 자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좀 더 쉬고 누리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자신을 쳐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려는 습관을 잘 들여야 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거룩한 습관은 억만금을 주고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알바생을 불러다가 내 대신 기도하게 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거룩한 기도의 습관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이지,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습관은 가장 좋은 습관입니다. 이보다 좋은 습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루를 열며 기도하는 사람이, 하루를 공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아니죠.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세상을 맡깁니다.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시는 겁니다.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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