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018.1.21-더 큰 영광으로(행 16:25-26)

최고관리자 0 690 2018.05.02 17:09

더 큰 영광으로

(행 16:25-26)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줌으로 그 여종의 주인의 고소로 매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는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사실 16장을 보면, 귀신들린 점치는 여자가 사도바울의 일행을 보며 쫓아와서 아주 지겹게 따라다니며 소리를 치는 겁니다. 그것도 여러 날을 따라다니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이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죠.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 귀신들린 여자의 외침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지목받고 높임 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왜요? 주님도 높임을 받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지목받는 자리를 피하시기도 하셨고, 자기가 교만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득이나 짜증나는 것은 사도바울 일행은 지금 하나님의 명령으로 복음을 위해 마게도냐에 왔고 루디아라는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여인을 만나 그녀의 집에 머무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들을 곤란케 하고 괴롭히는 여인을 고쳐주게 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의 주인이 와서 돈 벌 수단이 사라지자 바울일행을 고소고발을 해 감옥에 갇혀버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곳 마을에 왔고, 이제 복음전파를 위해 두디아라는 여인 집에 기거하게 되었는데, 난데없이 점치는 귀신들린 여인으로 인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으니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겠습니까? 


심지어는 매를 얼마나 맞았는지 등에서 피가 줄줄 흐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발에 차꼬가 채워져 있어서 아주 고통스러운 가운데 깊은 감옥 속에 갇혀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아주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바로 ‘한밤중에’ 이 한밤중이라는 단어에 우리는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밤중에’ 아주 시커멓고 음침한 곳에 갇힌 기억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사실 군대 있을 때, 선임들이 담력훈련을 시킨다고 한 번은 부대 안에 있는 공동묘지에 다녀오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곳을 다녀오면 남자라는 사실과 용맹스러운 군인으로 인정해주겠다고 그럽니다. 제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무서워도 꾹 참고 그곳을 다녀왔었습니다. 그곳을 다녀오는데 아주 무서워 혼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디 무서움에 떨면서 소리 지르며 다녀왔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자녀요, 믿음의 군사임으로 아주 당당하고 씩씩하게 찬송을 부르며 그곳을 유유히 한 바퀴 돌고 숙소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주 용맹한 군인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별거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있는 감옥은 어땠을까요? 으슥으슥한 무서운 곳보다 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밤중일 때면 얼마나 더 무섭겠습니까? 


바울과 실라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밤중에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을 하였더니 감옥의 모든 죄수들이 찬송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여러분,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어둠의 영들, 거짓된 것과 어리석은 사단의 계략을 여기서 무너뜨리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무엇이냐면 ‘찬송’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바울과 실라가 감옥이 무섭고 으슥으슥해도 그런 환경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쁨으로 찬송하기 시작했을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찬송을 하는데 옥들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옥문들이 활짝 열리고 죄수들의 발에 차꼬가 풀어져버린 것입니다. 모든 결박이 풀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정말 희한한 것은 ‘한밤중’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나 인생의 한밤중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한밤중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물질과 돈, 맘모니즘을 하나님 대신으로 우상숭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삶이 어려워지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세상적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보려고 말이죠. 그런데 그 한밤중에 있는 우리가 아무리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해결해보려고 해봤자, 사실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겁니다.


단 한 가지 방법이라면 세상의 모든 관점과 연약함, 그리고 어리석음들을 모두 다 버리고 주님 십자가를 따르며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주님을 따라가는 기가 막힌 방법을 오늘 바울과 실라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삶이 한밤중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시 119:13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아마도 우리의 삶이 지금도 막막하고 답답한 한밤중의 시간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할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밤중인 우리에게 빛이 받게 된다는 겁니다.


즉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기 시작했을 때 죄수들이 그 찬송을 듣고 하나님께서도 들으셨습니다. 그것도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을 한 것입니다. 그 때 그곳에 빛이 비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옥이 흔들렸고 옥문이 활짝 열리고 죄수들의 차꼬가 풀렸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은 그들이 기도도 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께 찬송을 높여 올려드릴 때 그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삶의 모든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이 문제, 저 문제, 이런 어려움, 저런 어려움을 고하며 그 문제를 풀어달라고, 해결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모두 다 제쳐놓고 우선 우리를 붙드시고 이끄시고 주인 되신 주님을 먼저 높여 찬송을 올려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문제보다 더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문제만 놓고 문제만 풀어달라고 했을 때 그 문제가 그들에게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였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찬송할 때 응답이 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떤 여자 집사님이 자기 교회 부흥집회 때 부흥강사 목사님을 찾아와 병 낫기를 기도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찾아와 병 고침받기 위해 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흥강사 목사님이 여자 집사님의 말을 듣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집사님, 저는 집사님의 병이 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집사님께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여자 집사가 너무 당황스러워하며 무슨 말씀이냐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네, 집사님은 지금까지 저에게 이래서 안 됐고, 저래서 안 됐고, 이렇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결국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집사님의 입술의 고백을 듣고 계십니다. 이래서 안 된 것이 아니라 이 상황 가운데에도 역사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런 상황 가운데에도 나를 이끄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치료가 집사님에게 임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집사님의 고백과 그 분의 부정적인 말로 인해 기회를 계속 놓치고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마 8:17)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벧전 2:24)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모든 약한 것과 연약함은 이미 주님이 감당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 우리에게 나음이 있을 것이요, 하나님 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려울 때 오히려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에게 온전히 비추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후에 그 집사님이 1달이 지나고 그 교회 담임목사님을 통해서 소식을 알려왔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집사님의 모든 태도와 습관을 바꾸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찬송하기 시작했더니 1달이 지났는데도 아프지 않고,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놀라운 일들과 기적이 일어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방법의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찬송은 얼마나 할까요? 우리는 어쩜 우리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관심이 별로 없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들의 감사와 기쁨의 찬송에 목말라하시고 그것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실 예배의 태도에 있어서 필요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있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놓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 올려드린 것도 없으면서 받으려고만 합니다. 해결되기만을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분위기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 주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우게 될 때, 주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우리의 예배 가운데, 우리 가정 가운데,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 찬송은 마치 승전가와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쟁에서 이겼음을 선포하며 힘차게 군가를 하며 개선장군이 되어 다시 본향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 이루신 일을 높여드릴 때 온 백성들이 환호하며 함께 축하하게 됩니다. 


찬송은 우리의 삶이 이미 전쟁에서 주님과 함께 승리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즉 사탄과 영적 싸움에서 이미 이긴 전쟁을 선포하며 날마다 이기며 나아가는 승전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을 통해 승리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 따라 역사하고 계심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막 11:23-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즉 우리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고백으로 인해 역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응답은 우리 믿음의 입술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찬송은 우리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은 그 때 우리에게 당신의 증거와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믿음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믿음은 하늘 영광으로 나아가는 연결 장치입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셔서 보장된 축복의 언약을 우리는 그것을 믿고 확인하며 내 마음에 그분의 언약을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마치 버스카드에 돈을 충전시키듯이 말이죠. 우리 마음에 이미 이기시고 승리하신 주님의 권세와 영광을 우리 마음 가운데 충전시키며 새겨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든 충전된 그 믿음을 내밀 때 그곳을 통과할 수 있고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결 장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송할 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확실히 나타나셔서 그분이 살아계시고 역사하고 계시는 증거를 보여주시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뜨고 지금 현재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백성들의 찬송 가운데 거하신다.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이 말씀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높여드리는 찬송가운데 거하신다는 말씀이죠. 오늘 우리가 임재 가운데 깊은 찬송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 이 가운데로 지나가셨습니다. 



(대하 20:21-22, 24-25)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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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25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유다의 왕 여호사밧은 그 백성을 데리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모압 자손과 암몬과 세일산 주민을 맞서기 위해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들은 군사들을 몰고 간 것이 아니라 백성, 즉 노래하는 자와 제사장들을 앞세워 노래와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그들 앞에 무엇이 펼쳐지게 되었습니까?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이 어떻게 되었다고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심으로 적군들이 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그들이 하나님을 찬송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아주 달콤하게 여기시고 언제나 늘 그곳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찬송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거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찬양과 감사 앞에서는 사단의 모든 일들이 완벽하게 파괴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대하 5:13-14)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거하실 일이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역대하 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 성전을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악기 연주자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들이 “여호와는 선하시고,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라고 노래하며 찬송하기 시작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하여 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임재입니다. 주님의 거룩함이 구름과 같이 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동안, 사람들의 머리 위에 그것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 구름은 “점점 더 짙어 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의 찬양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 큰 영광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이를 더욱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더 큰 영광으로 들어가라.


사랑하는 여러분, 더 큰 영광으로 올라가고 싶습니까? 

영적으로 말하면, 더 높은 고지로 올라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더 큰 영광’으로 나아갑시다. 

그렇게 되면 그곳의 공기와 기류가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곡조 있는 기도로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가야 합니다. 

즉 찬송을 통해서 말이죠.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 우리는 그분과 은밀한 교제, 즉 연애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연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살면서 누구에게 노래를 불러줍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높이게 되어 있죠. 그렇듯 더 큰 영광으로 들어가려면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향하여 감사와 기쁨으로 찬미하며 목소리를 높여 찬양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마땅히 존경과 경외를 표하며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우리의 예배적인 삶입니다.


(시 100:2-4)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찬송하며 그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임재가 풀어지기 시작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늘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영이 풀어지기까지, 예배의 영광이 임할 때까지 열심히 모든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높여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영광 가운데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즉 예배의 영이 이곳에 풀어질 때 영광스러운 신비 중 하나는 초자연적인 문, 영적인 통로인 하늘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부음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영광의 세계를 오르락내리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특별한 세계와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을 임재라고 말하는데, 영광이 풀어지게 되면 하나님 나라와 하나가 되게 됩니다.


(엡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천군 천사들이 영광의 문을 통해 믿음으로 찬송하는 자들에게 계시와 능력과 힘과 능력을 줄 것이며 치유하심을 통해 병든 자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고침 받고 문제들이 해결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차원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 앞에 우리가 찬송하기를 기다리며 열리도록 고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영광의 문이 열려지기를 말이죠. 


이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찬송 중에 임하시어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오늘 우리가 찬송하는 이곳에 주 여호와의 영이 내려와 하늘의 영광과 풀어지고 치료되어 자유를 얻는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영적인 기후가 바뀌도록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말하며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영광을 유지해야겠죠?


여러분의 마음이 늘 거룩하도록 유지하고 거룩한 습관, 정결한 삶, 항상 주님만 기뻐하는 삶이 되도록, 그리고 영광의 문이 열릴 때 언제나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찬송과 기도가 여러분들의 삶에서 떠나지 않도록 늘 준비하고 무장하는 삶을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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